2007. 4. 30(월) 15:00
아무도 신경을 안 쓰겠지만, 업데이트가 꽤 늦었다.
역시 아무도 신경을 안 쓰겠지만, 좀 바쁘셨다... 공짜로 읽는 너네들이 이해해라...
Rouen의 명물인 Gros Horloge를 지나 우리가 간 곳은 이번 여행 3대 테마중 하나라 할 수 있는 Jeanne d'Arc(1412~1431, 나머지 두 개는 정복자 윌리엄과 D-Day 해변이다.. 받아적어!)가 뼈를 묻은 곳인 Église Jeanne d'Arc(Church of Saint Joan of Arc)이다.
잔다르크는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여인이다. 자그마치 35년 동안이나 식민지배를 경험해 본 우리로서는 어느날 짜잔 하고 나타나 백년전쟁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끌어 낸 이 앳된 소녀의 존재가 충분히 부각시킬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나는 백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도 잘 모르고, 잔다르크가 그 전쟁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도 잘 모른다. 게다가 왜 화형을 당했으며, 500여년 정도가 지나서야(1920년) '마녀'라는 꼬리표를 공식적으로 떼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무식하다고? 정확히 아는 사람은 혼자만 알지말고 나에게 가르쳐주기 바란다. 지식이란 넘쳐흘러 남에게도 전달되어야 제맛이니까..)
내가 겪은 잔다르크는 당연히.. 영화 Jeanne d'Arc(2000, 뤽베송 감독, 밀라 요보비치 주연)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우리의 베송 형님이 뭐에 꽂히셨는지 막판에 너무 난해하게 만드셨다...
이 영화를 본지 좀 오래되어 별로 기억에는 없다.
그저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전투신을 기대하였으나 전투장면에서 잔다르크가 한 일이라고는 군사대열을 뛰어다니며 싸움을 독려하는 장면과(지는 안 싸우고 말이야..), 영화 후반부의 더스틴 호프만과 펼치는 사이코 드라마 연기대결이었다.
아마 이 영화부터 뤽 베송이랑 밀라 요보비치랑 사귄거 같은데..
그리고 이 영화 이후로 요보비치 여사는 여전사 이미지를 뒤집어 쓰고 제 5원소에 이어 최근의 '레지던트 이불'(이거 반드시 봐야 되는 이불이다.. 이번에 3편 나온다는데 반드시 봐야된다...)까지 그저 총쏘고 발차기하며 날라다닌다..
원래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그저그런 영화로 생각하였으나
2편부터 완전 컬트무비로 변신하여 나를 열광케 하는 시리즈이다...
3편이 겨울에 나온다는데 반드시 볼 것이며,
영화에 나오는 '엄브렐라'라는 회사에는 나중에 취직도 해 볼까 한다..^^
아무튼 이런 영화의 기억을 더듬으며 잔다르크가 화형당한 곳에 세워졌다는 교회로 갔다.
그 후손들이 자신이 화형당한 동네에서 이런거 만들어 판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울러.. 우리도 유관순 케익 한 번...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교회의 외관이다. 교회의 외관은 물고기 지느러미 마냥, 혹은 남산위에 저 푸르른 소나무가 둘렀다는 철갑마냥 날카로운 톱니모양으로 육중한 모습이었다.
상당히 아뤼스틱 했다.





우리나라 언론들이 당장 너네 취재하러 갈거니 거기서 꼼짝말고 기다려라..

참고로 여기서 산 기념품(잔다르크 피규어)은 한국은행 모 과장님 컴퓨터 위에 고이 모셔져있다..
나 일주일간 휴가 간 동안 내 일 대신 해 주느라 참 욕 보셨슴돠..ㅋㅋ
외관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내부의 모자이크이다.
아 잠깐. 모자이크 이야기하전에 하나 더 놀란 것은, 교회에 들어가려하니 어떤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프랑스 인들도 일본인 마냥 친절하단 말인가. 역시 바께뜨빵 쳐먹는 새끼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라며 들어가는데 쑤욱 오른손바닥을 내밀며 나에게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관대하지만, 거지에게 돈을 줄만큼 자비심은 별로 없다. 그리고 이미 머나먼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이까지 와서 돈질 하며 충분히 프랑스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밀쳐버리고 교회 내부로 들어갔다.
교회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16세기에 만들어졌으며, 2차대전 통의 그 과격한 폭격에 박살날까봐 완전히 해체해서 안전한 곳에 옮겨놓았다가 1970년대에 이 건물을 새로 지을때 다시 조립한 것이라 한다.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할 뿐만 아니라 굉장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여행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럼 이제부터 잔다르크에 대해 잠시 알아볼건데, 먼저 백년전쟁부터 잠깐 살펴보자.
백년전쟁은 알다시피 영국이랑 프랑스가 백년동안 치고받으며 싸운 전쟁을 이야기한다. 영국이 1066년 노르만왕조의 성립 이후 얄밉게도 프랑스 내부에 영토를 소유하자 프랑스는 평소 이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그러다가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가 없이 사망하자, 그의 4촌 형제인 발루아가(家)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러자 뜬금없이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그의 모친이 카페왕가 출신(샤를 4세의 누이)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왕위(王位)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둘은 더욱 으르렁 거리게 되었다.
에드워드 3세는 똘아이 마냥 플랑드르에 수출해오던 양모(羊毛) 공급을 중단하자(시비를 건거지..) 그 보복으로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기옌, 지금의 가스코뉴 지방의 몰수를 선언하게 된다.(이 땅 내꺼다..ㅆㅂㄴㄷ아..)
이에 빡 돈 에드워드 3세는 1337년 필리프 6세에게 공식적인 도전장을 띄우게 되었다.
근데 모든 전쟁이 다 밥그릇 싸움인지라, 이 전쟁도 명분은 왕위 계승 운운하지만 알고보면 중세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이던 플랑드르 지방을 차지하기 위한 두 나라의 싸움이라 볼 수 있다.
원래 프랑스령인데 모직물의 독점공급자이던 영국이 이 지방을 경제적으로 지배해오자 프랑스는 영국에 대해 당연히 안 좋은 감정이 생겼다..따라서 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이 두 지방의 쟁탈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렇게 양국은 백여년동안 피터지게 싸웠다.


1429년의 어느 날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들었다고 한다.. 일단 믿자..) 고향을 떠나 서쪽으로 가서 루아르 강변의 시농성(城)에 있는 샤를 황태자(뒷날의 샤를 7세)를 방문하였다.
잔다르크의 친필 싸인..
당시의 프랑스는 북반부를 영국군 및 영국에 협력하는 부르고뉴파(派) 군대가 점령하고 있었고, 프랑스의 왕위도 1420년의 트루아의 조약에 따라 샤를 6세 사후에는 영국왕 헨리 5세가,
또 그의 사후에는 그의 아들 헨리 6세가 계승하도록 되어 있어, 황태자 샤를은 제외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영화에서는 존 말코비치가 졸라 어리버리하게 나왔다. 어리버리하니 왕위나 빼앗기지..)
이에 잔 다르크는 샤를을 격려하고(영화에서 보면 TV도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개혁당 전당대회 참가한 젬수가 유시민 알아보듯 첨 딱 보고 그가 왕임을 알아맞힌다...잔다르크는 미아리에 돗자리 깔았어도 대성하였으리라..) 그에게서 받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영국군의 포위 속에서 저항하고 있던 오를레앙 구원에 앞장서서 싸웠다.
영국군을 격파하여 오를레앙을 해방시킨 데 이어 각지에서 영국군을 무찔렀다.
흰 갑주에 흰 옷을 입고 선두에 서서 지휘하는 잔 다르크의 모습만 보고도 영국군은 도망하였다.
(장판교에서 일갈로 조조군을 물리친 장비랑 한 판 붙여보고 싶은 심정..)
이리하여 그 해 5월 상순, 영국군은 오를레앙에서 완전히 패퇴하였다.
랭스까지 진격한 잔 다르크는 이곳 성당에서 전통적인 전례에 따라 샤를 7세의 대관식(戴冠式)을 거행토록 하였다.
이에 샤를 7세는 영국의 헨리 6세에 앞서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잔 다르크에 대한 왕의 측근들의 질시와 선망 속에서도 잔 다르크는 더욱 충성을 하였다.


주위에 애들은 모두 충성 충성 추우우우웅성~~

1430년 5월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파 군사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1431년, 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혀, 이단(異端) 선고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을 당하였다.
뒤에 샤를 7세는 앞서의 유죄판결을 파기(1456), 명예를 회복시켰고, 가톨릭교회에서는 1920년 그녀를 성녀로 시성(諡聖)하였다.... 고 한다..
궁금한 것은...
왜 그녀는 전쟁에 나섰을까?
남녀평등이 일반화된 현재도 여성들의 군복무 문제에 대해선 찬반 양쪽 진영이 피를 토하며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데 하물며 600여년전에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진정 신은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그녀에게 계시를 내렸고, 그녀는 그저 그 지시에 충실했을 뿐일까?
그럼 신은 왜 프랑스를 택했을까? 이미 영국이 이긴거나 마찬가지인 전쟁인데..
신들끼리 라스베가스에서 도박하시는데 프랑스에 몰빵하셨나? 그럼 이거 승부조작아냐.. (라스베가스 CSI 길반장이랑 마이애미 호반장 다 불러.. 이거 조사해야되..)
아무튼 한 소녀의 용기로 인해 프랑스는 칼레 이외의 영국령(영국은 노르망디 공국 시절부터 차지해오던 땅 거의 다 잃었다..)을 다 찾게 되었고, 상비군을 두는 등 향후의 절대왕정 체제를 향한 첫 걸음을 내 딛는다.
또한 영국은 이 전쟁 끝나고 또 왕위 계승을 둘러싼 '장미전쟁'을 30년동안이나 치르고 난 후(전쟁 지겹지도 않나..) 유럽과는 거리를 둔 채 시민국가로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한 소녀의 용기가 세계 역사의 방향을 바꾼 것이며, 신이 만약 이러한 의도로 저 소녀를 선택하셨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두셨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잠시 저 교회의 철갑을 둘러보며 벤치에 앉아서 호흡을 돌린 우리는 이 동네의 '노트르담'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참조 : www.wikipedia.org , 네이년 백과사전, Lonely Planet








2008/04/24 00: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