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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mandie - 20.Bayeux

2007/11/11 15:07, 글쓴이 tunanbeef
2007. 5. 2(수) 15:00

"There's one reason why several million visitors descend on Bayeux every year - a 70m-long piece of painstakingly embroidered cloth known to the French as La Tapisserie de la Reine Mathilde(Tapestry of Queen Matilda), and to the rest of the world, rather more prosaically, as the Bayeux Tapestry."

이번 여행기간 내내 참고했던 Lonely Planet의 Bayeux를 설명하는 부분 맨 앞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외에도 Bayeux는 D-Day(노르망디 상륙작전)이후 최초로 독일군으로부터 해방된 동네이고, 2차대전 기간동안 별 피해를 입지않은 몇 안되는 동네 중 하나이다. 따라서 오래된 고딕양식을 건물과 노르만 양식의 가옥들이 골목마다 들어선 아름다운 거리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딱 하나다. 태피스트리(색실로 짠 주단) 보러..

폭50cm, 너비가 약 70m달하는 이 태피스트리는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할 당시의 중요한 역사적 장면 58개로 구성되어있고, 각 장면 밑에는 라틴어로 주석 및 설명이 간략하게 적혀있으며, 순전히 정복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Tapestry of Queen Matilda(윌리엄의 마누라님..)로 불리긴 하지만, 실은 윌리엄의 의붓형제인 Odo 추기경이 1077년 Bayeux 성당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지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왜 '왕비의 태피스트리'라 불렸을까? 뭐 당시에 수를 놓는 일은 당연히 여자들이 했을테니 전쟁은 왕이 하고, 그 승리를 기념하는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작업은 왕비가 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는것 같다.. 정확히 아는 사람 손!!

그리고 무식하게 크기만 댑다 큰 것이 아니라 전투장면, 당시 의복, 전장에 흩뿌려지는 병사의 피, 1066년에 나타났던 헬리혜성 등이 매우 꼼꼼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라 한다.

여기서 잠깐 그 유명한 윌리엄에 대해 알아보고 태피스트리 구경하고 가도록 하겠다..
여행은 그냥 돌아댕기는게 아냐.. 뭐 좀 알고 돌아다녀야 훨씬 재미있으니 꾹 참고 들어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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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I of England (William the Conqueror, 1028~1087)는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Duke of Normandy, as William II)로 있다가 1066년에 영국을 아작내고 왕이 된다(King of England, as William I).
 
위대한 사람이다 보니 예명도 많아서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Guillaume le Conquérant)으로 불리기도 하고, 혹은 완전 반대로 망나니 윌리엄(William the Bastard, Guillaume le Bâtard)로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정복자이고 영국의 입장에서는 망나니인가?
아니면 반대로 영국에서는 자기네 나라를 지배해주시고, 아주 오랫동안 노르망디지역까지 같이 다스려주셨으니 위대한 정복자이지만,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지들 나와바리에 빌붙어 살던 Duke 주제에 영국의 왕이 되고 100년전쟁의 빌미까지 제공한 천하의 개망나니인가?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다. 이 역시 아는 사람 있으면 바로 알려주기 바란다..





암튼 노르망디 지역의 Falaise에서 당시의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Robert II의 아들냄이로 태어나서 7살의 나이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노르망디 공작이 된다.(팔자가 참 좋아..) 영어로는 Duke William of Normandy, 프랑스어로는 Guillaume duc de Normandie, 그리고 라틴어로는 Guglielmus Dux Normanniae라고 한단다..그러고 보니 학교다닐때 술이나 퍼마시지 말고 라틴어를 조금은 배워볼껄 그랬어..

아무튼 당시 윌리엄은 영국의 왕인 Edward the Confessor(윌리엄 아버지의 사촌이라고 한다. 그럼 윌리엄이랑 5촌인가? 5촌 아재 되겠다..)가 자식없이 죽으면 영국왕 자리가 당연히 자기한테 올 걸로 믿었고, Edward 양반도 이걸 약속했다고 한다.(이건 윌리엄의 주장이라고 한다. 아무도 몰라~~)

그러다가 Edward가 죽으면서 자신의 왕위를 Harold Godwinson에게 넘겨주니 윌리엄이 빡돌아서 침공을 했다. 여기서 Harold Godwinson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자면, 당시의 노르만족들이 손도끼 하나 들고 온 유럽을 휘젓고 다닐때 이들에 맞서 Saxon족의 문화를 지킨 백작이라고 한다. 나름 영국 본토에서는 영웅대접 받던 사람이었고, 윌리엄이랑 친하게 지낼때는 그에게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Conan II(당시 Brittany 백작)을 아작내기도 하고, 윌리엄에게서 작위를 받고 충성을 맹세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자기 밑에서 꼬붕노릇하던 넘이 뜬금없이 영국이 왕 행세(Harold II)를 하게 되니 윌리엄이 얼마나 빡이 돌겠는가.. 그래서 단박에 쳐들어 간다.

나는 단지 블로그에다 글을 쓰는 사람이지 삼국지나 무협지를 집필하는 사람이 아닌 관계로 세부적인 전투 진행상황은 설명하지 않겠다. 귀찮다.
간략하게 설명만 하자면, 온갖 이해관계로 얽힌 연합군(배 600척에 7000명 데리고 간다)을 이끌고 도버해협을 건너서 Saint-Valery-sur-Somme에 상륙하려던 윌리엄은 강한 저항에 부딪혀 고전하던 중, 북쪽에서 Harald III(당시 노르웨이 왕)이 상륙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Harold II가 어쩔수 없이 북쪽으로 군사를 돌리자 Tostig라는 지역에 상륙하여 바로 치고 올라가서 최종적으로 Hasting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영국을 점령하게 된다.

그리고 뭐... 지금까지 이렇게 역사가 이어지고 있고, 이 때문에 영국 말이랑 프랑스어가 뒤섞이게 되고, 백년전쟁도 일어나고, 뭐 그렇게 된다..


대략적인 시퀀스를 파악햇으면 본격적으로 Musée de la Tapisserie de Bayeux를 둘러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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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노르망디 공국의 지도이자,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돌아댕기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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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높으신 분이 입던 옷인가보다.. 왕이 입던 옷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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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없는 날 놀고있는 병사들.. 저 뒤에 자빠져 자는 놈은 병장인듯..
'윤병자임.. 행보관님이 찾으시는데 말입니다..' .....'없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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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들 사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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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노노노노노노랗지.. 근데 내내내내가.. 빨간색!! 이럼 빨간색이야!! 어!
윌리엄의 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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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십자가인데, 북유럽(바이킹)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한다..




태피스트리는 어두운 암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으로 각 장면을 설명해주는 휴대용 이어폰이 있었다..

한국어는 없다.. 그래서 영어로 들었는데 토익 시험 치는 더러운 기분이 들어 중반쯤에는 그냥 구경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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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 다 하고 나면 딱 나오는 곳.. 바로 기념품 구입점..
솔직히 돈이 남아돌면 사고 싶은 것 많지.. 근데 난 돈이 없잖아? 그래서 그냥 공짜 팜플렛만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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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 끝내고 우리가 간 곳은 Cathédrale Notre Dame..   우리 말로 '동네 성당'이다.
고딕 양식으로서 13세기에 지어졌고, 출입구의 아치는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중앙 타워는 15세기에 지어졌고, 청동으로 만들어진 돔은 186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뭐 건물자체가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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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근처에 있던 물레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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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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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저기 왼편 벽에 붙어있는 심상찮게 보이는 것이 바로 아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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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지? 저 둥근건 지구인가? 그냥 에드벌룬? 천사들이 명랑운동회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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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만 비춰지는 햇빛이 맘에 들어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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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동네는 D-Day이후 최초로 독일군에서 벗어난 동네이다.
영국 56연대 포병대대를 기리는 코너인듯 하다..



이렇게 당일의 일정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호텔 근처에 있던 케밥집에서 케밥 2개 사고, 근처의 마트에 가서 빵 몇 조각 산 다음 침대에 누워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텔레비젼에선 당시의 대선후보였던 사르코지와 로얄 여사가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1066년이면 우리나라로 치면 대충 고려 중기 정도(무신의 난이 언제 일어났냐?)되는 듯 하다.. 우리는 2층짜리 건물도 변변히 없이 목조건물 짓고 살때 얘네들은 전쟁하고, 태피스트리 만들고, 깨끗하게 보관하고, 엄청난 규모의 성당을 짓고... 뭐 암튼 그렇게들 살았다..

이미 당시에 이룩한 물적 토대가 달랐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아직도 후세손들은 그 당시에 지어지고 만든걸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원래부터 부잣집 도련님이고 우리는 '머리는 좋은데 돈이 없는' 집안 맏이 같다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아마 이런 논리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멀었다.. 성장이 우선이다. 열심히 살자.. 파업하지마 새끼들아..'라는 말이 버젓이 사회분위기로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부잣집 도련님을 완벽하게 앞서나가거나 따라가진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형편에 맞는 생활수준 향상은 충분히 이룰수 있지 않을까?
사치가 제거된 수준있는 문화생활, 거만이 제거된 자부심과 문화재 보존, 선진문화에 대한 맹목적 비굴이 아닌 비판적 수용, 무엇보다 '인간답게' 돈 걱정없이 아픈 곳을 치료받고, '인간답게' 돈 걱정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은 의지와 사회적 공감대의 문제이지 결코 못 이루어낼 불가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목표도 안정해서 그렇지 목표를 정하고 방법을 모색하면 못 이룰 것도 없지 않은가..

덜렁 겉수치로는 3만불, 4만불을 달성하였으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심각한 양극화, 출세지향의 사교육 성행과 조기 미국유학 급증, 딸아이 수술비 마련을 위해 은행강도 혹은 병원비 부담에 안락사 택해..등의 타이틀을 단 신문기사가 끊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확실히 길을 잘못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별로 살아가는데 아무 도움 안되고, 지금 당장의 아파트 대출금 갚는데는 백해무익한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부터는 예비군복 입고 2차대전 당시의 유명한 전장을 누비게 된다.. 기대하시라..
2007/11/11 15:07 2007/11/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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